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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도 가짜 뉴스가 있었을까?

기자40 2025. 2. 26. 12:06

정보는 인류 문명의 중요한 동력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늘 거짓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가짜 뉴스는 단순한 오해나 실수를 넘어, 의도적으로 진실을 왜곡하거나 사람들의 믿음을 조작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고대 비문에 새겨진 과장된 승리 이야기부터 소셜 미디어에 퍼지는 음모론까지, 가짜 뉴스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인간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글은 가짜 뉴스의 기원부터 디지털 시대까지, 그 진화 과정을 세 가지 주요 시기로 나누어 탐구합니다. 고대부터 시작된 속임수의 씨앗, 인쇄술로 대중화된 거짓, 그리고 현대에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가짜 뉴스를 통해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이해할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가짜 뉴스가 어떻게 권력과 기술, 사회적 믿음과 얽히며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옛날에도 가짜 뉴스가 있었을까?
옛날에도 가짜 뉴스가 있었을까?

 

고대부터 시작된 속임수의 씨앗: 가짜 뉴스의 기원

인간이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이래로 정보는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왔습니다. 가짜 뉴스의 역사는 문명의 시작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들이 자신의 업적을 과장하거나 적을 비하하기 위해 비문에 거짓된 이야기를 새겼습니다. 예를 들어, 람세스 2세는 카데시 전투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고 기록했지만, 실제로는 히타이트와의 싸움이 무승부에 가까웠다는 것이 현대 학자들의 분석입니다. 이런 과장은 권력을 유지하고 백성의 신뢰를 얻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가짜 정보는 흔했습니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들은 이야기를そのまま 기록했는데, 그중에는 터무니없는 소문이나 과장된 전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인도에 금을 캐는 거대한 개미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지만, 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였습니다. 당시에는 정보의 진위를 확인할 수단이 부족했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사람들의 믿음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정치적 목적으로 가짜 뉴스가 체계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정적을 비판하거나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거짓 소문을 퍼뜨렸고, 아우구스투스는 공식 문서나 연설을 통해 사실처럼 포장된 이야기를 유포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선전(propaganda)의 초기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중세로 접어들며 종교가 가짜 뉴스의 주요 무대가 됩니다. 십자군 전쟁 당시, 교회는 이교도와의 싸움을 정당화하기 위해 무슬림에 대한 과장된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예를 들어, 무슬림이 기독교인을 잡아먹는다는 이야기가 유럽 전역에 돌았고, 이는 전쟁에 대한 열정을 부추겼습니다. 다만, 이슬람 자체가 잔인하다는 일부 주장은 가짜 뉴스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당시 문맹률이 높아 대중은 권위자의 말을 그대로 믿었고, 이는 가짜 뉴스가 사회를 움직이는 무기가 되게 했습니다.

고대와 중세의 가짜 뉴스는 권력, 종교, 전쟁과 얽혀 있었습니다. 정보 전파 속도는 느렸지만 영향력은 강력했고, 이는 현대 가짜 뉴스의 뿌리로 이어집니다.

 

 

인쇄술과 신문의 등장: 가짜 뉴스가 대중화되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은 정보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책과 팸플릿이 대량 생산되며 지식이 퍼졌지만, 거짓 정보도 함께 증폭되었습니다. 16세기 유럽에서는 '괴물 탄생'에 대한 소식이 인쇄물로 유포되며 공포를 조성했습니다. 두 머리를 가진 송아지나 날개 달린 인간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종교적 징조로 해석되며 사람들의 불안을 키웠습니다.

17세기 신문의 등장으로 가짜 뉴스는 새로운 전기를 맞습니다. 영국 초기 신문들은 독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과장된 기사를 실었습니다. 1665년 런던 대역병 당시, 일부 신문은 질병의 원인을 외국인이나 마녀 탓으로 돌리는 터무니없는 보도를 내보냈고, 이는 사회적 혼란을 부추겼습니다. 이런 기사들은 사실 확인보다 판매 부수를 우선시했습니다.

18세기 미국에서는 가짜 뉴스가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독립 전쟁 직전, 식민지 신문들은 영국에 대한 반감을 키우기 위해 억압 사례를 과장해 보도했습니다. 보스턴 학살 사건은 실제보다 잔혹하게 묘사되어 대중의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반대로 영국 측은 식민지 주민을 야만인으로 묘사하며 본국 여론을 조작했습니다.

19세기 '옐로 저널리즘'은 가짜 뉴스의 대중화를 가속화했습니다.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와 조지프 퓰리처는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허위 보도를 경쟁적으로 내보냈습니다.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을 앞두고, 허스트의 신문은 스페인군이 쿠바에서 잔학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과장된 기사를 실어 전쟁 여론을 조성했습니다. 허스트가 화가 프레더릭 레밍턴에게 “당신이 그림을 주면 내가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말했다는 일화는 이 시기 가짜 뉴스의 힘을 보여줍니다.

인쇄술과 신문은 가짜 뉴스를 소수의 권력자에서 대중 매체로 확장시켰습니다. 정보가 더 많은 사람에게 도달하며 거짓의 파급력도 커졌고, 이는 현대적 가짜 뉴스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가짜 뉴스: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거짓

인터넷의 등장은 가짜 뉴스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되며 거짓 정보는 빠르게 퍼졌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블로그와 포럼이 늘어나며 음모론과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급증했습니다. Y2K 버그에 대한 공포는 컴퓨터가 멈출 것이라는 과장된 주장으로 증폭되며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소셜 미디어가 대중화된 2010년대부터 가짜 뉴스는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했습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알고리즘을 통해 자극적인 콘텐츠를 우선 노출시키며, 거짓이 진실보다 빠르게 확산되는 현상을 낳았습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는 러시아발 가짜 뉴스가 대량 유포되어 논란이 됐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 가짜 뉴스는 진짜 뉴스보다 6배 빠르게 공유되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디지털 가짜 뉴스의 위험성을 드러냈습니다. 일부에서는 전염병과 백신이 인간 몸에 칩을 심는 전 단계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온라인에서 퍼졌습니다. 바이러스가 실험실에서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급속도로 확산되며 공중보건 정책에 대한 불신을 키웠습니다. 유튜브와 틱톡 같은 플랫폼은 짧고 강렬한 영상으로 이런 이야기를 더 설득력 있게 보이게 했습니다.

가짜 뉴스를 막기 위한 팩트체킹 사이트와 AI 검증 도구가 등장했지만, 거짓 정보의 생산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딥페이크 기술은 영상까지 조작하며 가짜 뉴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2020년대 들어 정치인의 가짜 연설 영상이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되며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가짜 뉴스는 사회적 신뢰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진화했습니다. 정보가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속도와 규모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으며, 진실을 가려내는 책임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가짜 뉴스의 역사는 인류가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마주한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고대의 권력자들은 과장된 기록으로 백성을 설득했고, 인쇄술과 신문은 거짓을 대중의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가짜 뉴스는 기술의 힘을 빌려 전례 없는 속도와 규모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 긴 여정 속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가짜 뉴스가 단순히 사라질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권력, 이익, 그리고 인간의 감정을 둘러싼 복잡한 맥락 속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형태로 나타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우리에겐 이를 대응할 도구와 인식도 함께 발전해 왔습니다. 팩트체킹과 비판적 사고는 가짜 뉴스의 파도를 막는 방파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가짜 뉴스의 역사를 돌아본 것은 단순한 과거 탐구가 아니라, 우리가 현재와 미래를 더 현명하게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진실을 찾는 노력은 끝나지 않았고, 그 책임은 이제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